살 펴 보 기

내성천변 문화재 - 우금촌 만취당 옆의 빈집

길위의행복 2010. 5. 17. 23:41

만취당 앞쪽의 돌담을 끼고 오른쪽으로 갔습니다. 짧은 거리였지만 밭을 지나 도달한 곳은 사람이 살지 않아 허물어져 가고 있는 옛집이었습니다. 옛집이라곤 하지만 몇 백년된 집은 아닌 듯한데, 그럼 몇 십년쯤 된 집일까요... 조선시대 사극에서 보는 기와집과는 분위기가 다르고, 어릴 적 시골에서 보던 집하고는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옛집이라고 하면 부지불식간에 조선시대 양반이 살던 기와집과 서민들의 초가집만을 떠올리고 있었네요. 새마을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취락구조개선사업 이전 단계의 가옥 구조는 아주 어릴 적 기억에 어렴풋이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오히려 낯설게 다가 옵니다. 근현대사가 교육과정에서 외면받거나, 어두웠던 시절로만 자리잡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흠, 지나친 비약인지도 모르겠네요.


시멘트와 돌로 단을 해 놓은 걸 보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2010.05.08 오전]


흙집은 사람이 살지 않으면 더 빨리 허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냥 속설인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타당한 이야기라면 사람이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물질, 특히 기체(예를 들자면 연기) 같은 것들이 집의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건 아닐까요... 이것 역시 상상일 뿐입니다.


[2010.05.08 오전]


다른 곳에서 발견했다면 반가웠을 이것도 버려진 집에 있으니 왠지 씁쓸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타작을 하고 난 다음, 남은 벼이삭들을 모아서 이걸 이용해서 마저 털기도 했습니다.


[2010.05.08 오전]


선데이서울에서 오려 붙인 거겠지요? 대략 80년대 초중반쯤 될까요? 제가 86년부터 88년까지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는 이상아가 한창 인기 있어서 친구들 방이나 책받침에서 온통 이상아만 볼 수 있었거든요. 하여튼 이상아 분위기보다는 조금 더 고전적이라서 80년대 중후반은 아닌 듯합니다.


[2010.05.08 오전]


집을 지은 사람이 참 세심한 감각을 가졌을 거라고 짐작케 하는 장면들입니다.


[2010.05.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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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8 오전]


주인은 있겠지만, 살고 있지는 않아서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군요. 한편으론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고 이렇게 온라인에까지 올려 놓았으니 정작 주인이 이 글을 본다면 그리 기분 좋을 일은 아닐 듯하여 미리 너그러운 이해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