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및 장소: 2009.01.26 14시 ~ 16시, 경북 영주 이산면
날씨: 맑음
설날 점심을 먹고 동네의 겨울 풍경을 담고 싶어서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동네 앞의 천방둑을 따라 왔다갔다하면서 몇 장 찍고 들어 왔을텐데, 불현듯 서산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풍경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러진 나무 막대기 두 개를 주워들고 지팡이 삼아서 가파른 산비탈을 올랐습니다. 지난 추석 때 벌초하러 가기 위해 풀을 쳐 둔 곳이긴 하지만 경사가 워낙 심하고 눈까지 남아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올라갔습니다. 아래 사진은 중턱쯤에 올라서 동쪽으로 바라 본 풍경입니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하천은 낙동강의 지천인 내성천입니다. 하천을 따라 위쪽으로 몇십 킬로미터 올라 가면 봉화에 닿습니다. 저와 제 고향친구들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내성천을 끼고 보냈습니다. 물, 모래사장, 둑, 나무, 어느 것 하나 기억이 머물지 않았던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논 가운데 시커멓게 탄 부분은 둔보인데, 수초가 많이 자라서 태웠나 봅니다. 추운 겨울에 나무썰매 하나 달랑 들고 와서 타다가 해질 때쯤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서산 아래쪽에 사당 하나가 서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엔 가까이 가 본 적이 없었군요. 어릴 때부터 저기는 무얼하는 곳일까 간혹 궁금해 하긴 했지만 정작 제대로 알아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런데 참 아담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균형잡힌 지붕과 마당을 지키고 있는 정갈한 나무에 눈길이 한참 동안 머물렀습니다.
사당이 있는 곳에서 남서쪽으로 바라 보며 찍은 풍경입니다. 지난 가을 이후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을 것 같은 들녘입니다. 언뜻 박경리의 소설책 "토지"의 표지 사진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면에 보이는 산언덕배기도 자주 소를 올려 놓던 곳입니다. 그러고는 아래쪽 냇가에서 해질 때까지 뛰어 놀곤 했었지요.
어렸을 때니까 벌써 30여년 전이군요. 여기에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늘 시원한 물이 솟아 나서 여름 한낮에도 여기에만 오면 더위가 싹 가셨던 곳입니다. 그 우물이 언제,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네요. 이제는 부들 군락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산이 조금 전에 올라 갔던 서산입니다.
하나의 줄기에 매달린 씨앗의 개수가 얼마나 될까 궁금했습니다. 꼬치처럼 매달린 기둥이 좁쌀보다 훨씬 작은 씨앗들의 집합이니 가히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강아지풀이 그 푸르름을 다하고서도 형태를 잃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른 풀들은 말라서 쪼그라들거나 구부러져 있는데, 무거운 머리를 이고도 가녀린 줄기로 잘도 버티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짚가리는 두 가지 용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씨에 연날리기 할 때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쪼그리고 앉는 장소였습니다. 또 앞 천방에서 불놀이를 할 때 가장 쉽게 불을 살릴 수 있는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마을의 제일 남쪽에 있는 이 짚가리가 빈번히 사용되었지요.
봄, 여름, 가을, 농부와 기계 소리, 그리고 풀벌레 소리로 시끄러웠을 저 들판은 자신이 키웠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린채 침묵의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현대식 주택을 지어서 살고 있지만 별채를 옆에 지어 두고 창고와 외양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가마솥도 두 개 걸려 있습니다. 고구마를 구워먹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불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 집니다.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이 찾아 오니 송아지도 궁금한 듯 자꾸만 쳐다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아이도 송아지가 신기한지 주변을 서성이다가 지푸라기 몇 개를 들고 왔습니다. 지푸라기를 송아지한테 주려고 몇 번 시도하다가 송아지가 냉큼 받아 먹으니 화들짝 놀라고 있군요.
오늘이 설날인데 그리 늦지 않은 오후임에도 동네 골목길에 인적이 없었습니다. 적막만 흐르는 이곳에 때때옷을 차려 입은 어린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지나다니는 날을 다시 볼 수는 없겠지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의 방문이 마을에 조금이나마 온기를 불어 넣었기를 바랍니다. 오가는 것이 힘들더라도 좀 더 자주 방문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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